눈동자
이석구
너는
언제나 맑은 호수 같구나
속속 숨어 있는
깊은 곳 내 작은 욕망까지도
낱낱이 반영하고 마는 너
좁은 터 진흙에 빠지던 날도
너른 터 꽃밭에 눕던 날도
여지없이
정갈하게만 그려 넣어
차분히 나를 채우는구나
맑은
그대안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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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근길에
출근길에
십이 층 승강기로 내려오고 있었다
구 층의 문이 열리더니
한 사월쯤 되어 보이는 소녀가 탔다
"비 오는데?"
"아, 가방에 우산 있어요"
가방을 열어, 그녀
참 살갑게도 인사하였다
너도
한 칠월쯤 되면
말조차 걸기 힘들어지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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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의 강
끝 모를 시간의 강
그 위에는 온갖 삶의 조각들이 부유한다
매섭게 추워 도는
임신년 정월 어느 아침
출근 준비하던 이십 대 딸이
"아빠는 이제 좋겠다"
"왜?"
"퇴직하고 집에서 쉬잖아"
"세차게 여울목 거스른 물고기가 새 세상 만나는 법이야"
고달팠던 삶
기억의 골을 타고 오른 아린 싱그러움이
이 아침
마음을 보듬는 연민의 정으로
한 덩이 또
시간의 강에 던져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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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참나무 꽃
저
갈참나무 보소
노란 듯 녹색 구슬 주렁주렁 매달고서
누굴 그리 기다리시나
밤새
한 방울 이슬조차 힘겨워서
진땀 그리 흘리더니
아침
맑은 햇살 녹아드니
그제야
땀을 씻네 그려
그러니
좀 덜 매달 것이지
세상 욕심부려 뭐 하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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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 이석구에게 자연은 시적 언어의 대상인 동시에 그가 마주하고 있는 세계이며 일상의 사물들을 만나는 공간이다. 시인의 시선은 작고 보잘것 없는 존재들에 머물며 그들의 상처와 고통에 공감한다.
짙은 눈물 자국으로 세계 지도를 그려내는 달팽이의 흔적에서 몸으로 꾹꾹 눌러 밤새 깨쳤을 고통을 읽어내고 개미와 동일시하여 그냥 예사로 지나던 길이 숨기고 있던 어마무시한 물떠러지 구멍이 주는 일상의 공포를 체험하기도 한다.
그의 시선이 머무는 작은 존재들은 시인이 세상을 바라보는 태도가 어떠한가를 짐작하게 한다.
-김화선 문학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