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 앓이
김노을
어쩌면 우연이겠지
흔들리는 바람이겠지
슬며시 다가와
고뿔이란 이름을 던지고 간 너는,
이유가 생각나지 않더라
변명처럼 말이야
냉철한
해열제를 사야겠다
그리고
철들지 않는 바람 앞에서
신열을 앓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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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픈 도미노
전기료가 또 오른다고 한다
가스비
기름값 교통비도 오를 것이다
서민들에게는 인두세도 모자라
마시는 공기에도 세금을 매길 기세지만
부자들은 법인세를 깎아주면서 선심을 쓴다
컵라면 삼각 김밥
설탕 소금 생수도 오른다고 한다
돈 없고 배고픈 서러움은 무엇으로 달랠까!
인건비 줄이려고
AI가 대신하는 세상
놀부 마누라의 밥주걱에 붙은
밥알도 뺏어 먹는 세상이라니
낮고 낮은 곳에서
연하고 순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이
차례로 쓰러지지 않도록
가난한 마음들이
서로의 마지막을 지켜주어야 하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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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두야
연두야
나와 삼칠 일만 동거하자꾸나
너와 동거하는 동안
초록 이슬 잉태하겠지
연두야
너와 삼칠 일만 동거하자
달래도 낳고 냉이꽃도 피우며
노랑 개나리 손 잡고 진달래 꽃술도 담아보자
강남 제비 불러 모아 화전도 부쳐 먹자꾸나
연두야
들로 산으로
초록이 손잡고 뻐꾸기 노래하자꾸나
연두야 우리 삼칠 일만 동거하자꾸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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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명 받던 날
소금 로鹵, 새 을乙
소금 새가 되라 하시네
만인들의 가슴 속에 소금처럼 녹아 맛을 내는 글을
쓰라 하시네
노을이 되라 하시네
붉은 해의 기운을 받아
따스히 익어가는 저녁노을이 되라 하시네
미명을 따라
은구슬 위로 반짝반짝 비상하는 아침노을이 되라 하시네
은빛 물결 포근히 일렁이는 호수 안으로
잔잔한 평화의 노을이 되라 하시네
만인들의 가슴 속에서 순수하게 녹아지는 소금 새
희망을 노래하는
노을이 되라 하시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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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의 무릎
"오매~ 마파람 부는 것이 비 올랑갑네이~"
어머니가 통증 섞인 혼잣말을 길게
풀어내셨다
땅거미가 노을을
깨무는 저녁나절
멀리서 뱃고동 소리가
포구로 들어오고
일곱 살 막둥이는
엄마 품 속에서
별빛 수를 놓았다
그렇게 비는
밤새워 내렸고
빗방울 수 만큼
쑤셔댔던 통증은
새벽까지, 어머니
무릎을 드나들었다
"막둥아 장독 뚜껑 닫거라 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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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쟁이 넝쿨은 여전히 발톱을 세우고 벽을 기어오르며 푸르게 푸르게 절망을 덮는다. 처음엔 혼자 오르기 시작했던 벽을, 해가 지나고 자신의 존재가 드러나기 시작하면서 차츰 손잡고 오를 담쟁이들이 생기기 시작한다. 일 년, 이 년, 삼 년, 십 년이 지나는 동안 수십 미터의 벽은 푸르게 희망으로 뒤덮인다.
그러나 그 너머를 다녀온 사람들은 아니, 그 너머에 대한 확신이 있는 사람들은 담쟁이 넝쿨의 희망을 포기하지 않는 것이다. 시를 쓰는 일도 그렇다. 입안에 가득 고인 피를 토해내며 꽃을 피우듯이 통증의 언어를 뱉어내며 영혼의 꽃을 피우는 것이다.
안타깝지만 고통이 깊을수록 시의 꽃은 화려하게 핀다. 자신의 길에 연연하지 않는 김노을 시인의 해탈의 언어가 세상을 촉촉하게 밝히는 등불이 되었으면 좋겠다.
-김남권 시인 계간 P.S발행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