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의식의 세계를 옮겨놓은 것이 꿈이라고 말한 철학자가 있다. 그래서인지 현실에서 이루어지기 어려운 것들도 꿈속에서는 쉽게 이뤄질 때가 있다. 설혹 깨어났을 때의 허탈감을 맛볼지언정, 환상적인 그 세계에 빠지는 것은 행복한 일이 되기도 한다. 현실도피와도 같은 꿈속에서는 불가능한 일도 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럴 때는 잠결에도 꿈인 줄을 알아 깨어나고 닢지가 않다.
나는 남동생을 잃은 후로 몇 차례 꿈속에서 만난 일이 있다. 만나면 이내 헤어져야 하는 것을 알고 있기에, 한번은 명절 가까운 날에 찾아온 동생을 못 본체 하였다. 나를 향해 큰 걸음으로 오는 동생을 더 오래 보려고 곁눈질만 했는데, 반가운 마음에 손을 내밀었더니 어느 틈엔가 가버리고 없다.
마음먹은 대로 꿀 수도 없는 것이 꿈이지만, 여인들에게 자격이 주어지는 것이 태몽이다. 배를 불리는 열 달 동안 은은한 형상의 꿈에 태어날 아기의 미래를 비추어보며 여성으로서의 특권을 누린다.
이때 꾸는 꿈이야말로 태아에 대한 기대 때문인지 모두가 길몽 같기만 하다. 길몽을 말한다면 신라 무열왕의 왕비에 얽힌 이야기를 빼놓을 수 없다.
김유신에게는 누이 둘이 있었는데, 하루는 언니가 말하기를 간밤의 꿈이 망측하다 하였다. 본인이 산에 올라 소피를 보자 그 물줄기에 장안이 잠겼다는 얘기였다. 이 말을 동생이 예사로 여기지 않고 언니에게 비단 한 필을 주고 그 꿈을 샀다. 그가 훗날 그 꿈 덕에 무열왕의 아내가 되었다는 이야기다.
-본문 10~11쪽 '꿈의 향기'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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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진共振
청거북 한 쌍이 마주 보며 신호를 보낸다. 수면에 납작 엎드려 앞다리 둘과 뒷다리 둘을 쭉쭉 뻗어 거의 부동자세를 하다가 파르르 경련을 일으킨다. 물살도 덩달아 가만히 떤다. 생명체와 생명체 간의 소통이다.
아이들이 어릴 때 청거북 여러 마리를 어항에 키운 일이 있다. 병마개만 한 것을 사서 등딱지가 두툼해지도록 7,8년을 길렀다. 한데 이 녀석들은 저희끼리의 행위로도 모자라, 이 주인댁을 향해서까지 그 무언의 언어를 보내오지 않겠는가. 그럴 때면 나는 거북이만큼 작아져서 내면이 파르르 떨리곤 했다.
그 희귀한 행동이 청거북 세계의 사랑의 표시라는 지식을 습득하기 전이었지만, 그것들을 대하는 내 가슴은 형용할 수 없이 뛰었다. 같은 공간에서 생활해 온 시간만큼이나 미물과 사람 간에 소통이 이루어진 것이다.
구조물 사이에도 주파수가 맞으면 떨림이 일어난다고 한다. 미국의 한 디스코텍에서는 음악의 박자에 맞아떨어진 건물이 붕괴한 일이 있었다고, 연전 우리나라에서도 국기 게양대가 한밤중에 떠는 현상을 일으켜 마을 사람들이 크게 놀라는 소동이 벌어졌었다.
매일 같은 시간대에 하나가 떨기 시작하자 옆의 것도 이내 흔들흔들 움직였다.
공진共振-한 진동체가 다른 진동체에 이끌려 그와 같은 진동수로 울린다는 뜻이다. 즉 함께 떤다는 의미이다. 이것은 곧 소통이다. 서로 통한다는 얘기의 다른 표현이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도 공진현상과 같은 떨림이 일어날 때 무한한 의미를 확보하게 된다.
-본문 74~75쪽 '공진'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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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뜩할 수 있는 골骨에 시선이 멎는다. 아래위로 잇몸 틀까지 드러낸 유골의 모습이 전혀 볼썽사납지가 않다. 오히려 상대방의 눈길에 빨려들 듯 서로 주시하는 지순한 자태가 아름답다. 기껏해야 움푹움푹한 눈자리이거늘, 민둥하니 마모된 콧등이거늘, 약간의 간격으로 떨어져 두런거리는 듯한 입매이거늘, 나는 두골과 두골의 마주한 각도에 그만 천치같이 반해버렸다.
남녀 한 쌍이 꼭 부둥켜 안고 땅에 묻혀 지내다가 세상에 나왔다. 이탈리아 북부 만토바 부근의 신석기시대 유적지에서 뼈와 뼈로 얽혀있는 유골이 모습을 드러냈는데, 발굴팀(엘레나 멘토니)은 5천 년~6천 년 전의 사람들로 추정된다고 밝히고 있다. 나는 이 소식을 우연히 인터넷 창에서 접하고, 한참 동안이나 멍한 채로 다음 할 일을 잊었다.
우선 두상을 살펴보면 뒤통수의 곡선까지가 또렷 하다. 암만 봐도 뒤통수의 돌출이 적고, 턱선이 약간 부드러운 쪽이 여성인 듯싶다. 서로 눈과 눈의 높이가 같아 금세라도 불꽃 튀는 교감이 이뤄질 태세이다.
어깨와 어깨를 휘감은 팔과, 허벅지와 허벅지께로 포개어져 있는 건강한 다리뼈, 한참을 들여다보고 있자니 나 자신이 어느결에 유골 감정사가 되어 이름 모를 이들의 옛 삶을 들여다본다.
그들은 아마도 지극히 젊고 뜨거운 연인이었을 것이다. 틈만 나면 상기된 모습으로 맘속의 파동을 소곤거렸으리라.
-본문 78~79쪽 '포옹'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