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릉에서
박용재
그게
잇혀질 일이냐
나 죽는다 해도
그게 어디
그리 쉽게
잊혀질 일이냐
강릉에서
널 사랑한 일
그 일 말이다
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
그리웁게시리
우터 그러냐?
눈길 한 번 주지 않고
이 밤 달빛 속으로
그렇게 떠나가느냐
그리웁게시리
남대천변
새벽이슬 맺힌 달맞이꽃
젖은 꽃잎에 앉았다
고만 훌쩍 날아가 버리는
밤나비처럼
우터 그러나?
마지막 작별 인사도 없이
그렇게 지워져 가느냐
평생
그리웁게끔
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
붓꽃편지
나보다
날 더 사랑한 그대는
먼저 하늘길 가고
난 세상에 남아
붓꽃 핀 정원에서
편지를 쓴다
그곳 삶은 괜찮냐고?
고개 들어
하늘에 대고 소리친다
너무 보고 싶다고
울다가 다시 쓴다
다시 만날 테니
그때까지 잘 있으라고
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
동백꽃에게 마음을 건네다
잔 눈 얹힌
동백 꽃잎에게
봄이 곧 올 테니
조금만 참으라고
마음 건넸더니
봄은
이미 몸속에 있다며
붉게 웃네
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
하늘
저 푸른
하늘을 만지려면
또 얼마나
가야 하나
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
박용재의 시집 '신의 정원에서'는 가장 원초적이고 심미적인 시공간에 대한 회상과 그것들을 향한 지극한 사랑의 마음을 표상한 일대 송가다.
박용재 시인은 등단 40년 째를 맞은 시단의 중진으로서, 자신이 나고 자란 강릉의 자연과 역사를 풍요롭게 시적으로 굴착해왔다. 이번 시집도 '강릉'과 '꽃잎 강릉'의 흐름을 잇는 절절한 세번째 사향가인 셈이다. 그에게 서정시는 지난날에 대한 절절한 기억에서 비롯하여 거기서 완성되어야 하는 그 무엇을 지향하는 과정을 담은 언어예술이다. 말할 것도 없이, 그것은 지상의 불모성을 사랑으로 견디고 치유하고 극복해온 시간들을 담고 있다. 시인은 힘겨울 때면 시를 통해 위로와 충전을 받아왔는데, 특별히 이번 시집은 그 스스로에게도 두고두고 커다란 시의 집으로 빛을 쏘아줄 것이다. 더불어 독자들은 서정시에 대한 순연한 열정과 진정성의 실례를 경험하게 될 것이다.
-유성호 문학평론가 한양대 교수
박용재의 시집 신의 정원에서는 그가 자신의 고향 강릉에 바친 아름다운 송가다. 강릉지역에 이름 없이 피었다 지는 들꽃과 바람과 나비에 대해 누구도 그만큼 아름다운 시를 쓰기 어려울 만큼 집중의 밀도가 높다. 그는 강릉의 풍광을 옛 지명을 빌려 꽃의 나라로 명명하고 다시 그것을 격상하여 신의 정원으로 우리에게 되돌려 준다. 달의 정령이 연꽃잎에 가득한 풍경은 표현 그대로 신의 정원이라 할만하다.
천국에 비견될 강릉의 자연을 간결하고 빼어난 서정시로 형상화했다는 것은 시에 대한 발견이자 인생에 대한 깨달음의 결과일 것이다. 이는 자연 풍광 때문만이 아니라 그가 선천적으로 지닌 순정한 자연에 대한 근원적인 사랑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다. 소음이 가득한 우리 시대의 서정시에서 박용재의 시가 빛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최동호 시인 고려대 명예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