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력家族歷
강우식
나는 가족력이 있다. 누굴 탓하려면 피를 이은 부친을 들먹여야 하지만 고맙게도 나를 길러주신 아버지를 원망할 수는 없지 않은가. 이 병이 아주 고약해서 나에게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고대로 자식들에게까지 이어져 있다. 그러니 천형처럼 아들손자로 대대로 갖고 산다. 병원에서도 의사들이 온갖 병은 다 신약 개발이다 첨단 수술로 고치면서도 왜 가족력은 근본부터 뿌리 뽑을 방법은 못 찾는지 모르겠다. 유전성이 강한 것이 발병 원인이니까 워낙 가려내기란 참 힘들 것이다. 아무튼 나는 신장 즉 콩팥이 나쁘다. 소식小食에 음식을 가려 먹어야 되는 무척 까다로운 병이다. 이 병에는 마음 놓고 먹어야 되는 음식이 없다. 그런데 병원에 가면 담당 의사도 환자가 가려야 될 음식 정도는 다 알고 있다고 믿는지 별다른 주의 사항도 없다. 그냥 진찰하고 처방전을 준다. 그뿐이다. 거기다 가족력은 아니지만 아버지께서 살아생전에 좋아하고 잘 드시던 음식이 있어서 나도 은연중 따라 먹다보니 식습관처럼 인이 배였다. 매년 여름철이면 아버지는 천도복숭아를 특히 좋아 하셔서 크게 한 입 베어서 시원하게 자주 잡수셨다. 나도 딱딱한 천도복숭아를 매년 한 상자씩 들여와서는 시원하게 소리 내어 먹는 맛에 삼복 더위를 이겼는데 이게 글쎄 콩팥에 제일 안 좋단다. 그러고 보니 아버지도 천도복숭아를 너무 좋아해서 수명이 단축됐는지 모르겠다. 바나나도 백해무익이라서 삼가긴 했다. 마음 놓고 먹을 건 없고 굶으면 죽고 먹고 사는 거 참 딱한 팔자요 내 신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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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나기
봄이 오면 겨울나무들은 지난해에 피었다 진 꽃이며 잎이며 삶의 열매들은 다시 찾으려 한다. 계절 따라 임산부처럼 점점 무거워 진다. 열매를 달 채비를 한다. 사람들은 봄이 오면서부터 한기 들까 봐 겁나 겨울 내내 껴입었던 입성들은 하나씩 벗으며 가벼워진다. 나무는 어이하여 가벼운 몸으로 겨울을 견디고 사람은 옷가지들을 잔뜩 걸쳐야 겨울을 날 수 있는 것인가. 사람들에게는 절기따라 더우면 벗고 추우면 입는 자연본능이 있다면 나무들은 추울 때 더 추워야 사는 구도자 같은 결기가 있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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긁데
20대 초반 무렵이었다. 서정시밖에 쓸 줄 모르던 시의 걸음마였던 시절에 시를 써서 미당 서정주에게 여러 편을 보인 적이 있었다. 그중 시단에 처음으로 선보인 작품인 '사행시초'와 '박꽃'도 있었다. 흔히들 등단작은 시인의 대표작처럼 평생 못 잊는다고 일컫는다. 나에게 박꽃은 잊을 수 없으면서도 한편으로는 부끄러운 사연이 깃든 작품이다. "모든 노래 중에 사내만이 모르던/바가지 소리데//박, 박//그 산 같은 것을 뭉개보려고/고은 손톱에/피꽃이 맺히도록 바가지를 긁데"라는 구절로 시작되는 작품에서 "긁데"라는 시어를 "끅데"라고 당당히 미당에게 보였었다. 읽은 미당은 "끅데"가 틀린 자라며 표준말 "긁데"로 바로 잡아주셨다. 그때 내 나이는 갓 스무 살 미당은 마흔 다섯 살 당시에는 이 연세로도 의젓하게 노인 행세를 하던 옛날이었다. 작다면 작은 사소한 일일지 모른다. 내가 놀란 것은 식민지 시절을 살은 이 노인네가 틀린 철자도 천연스럽게 잡아 내는 것이었다. 그 무렵 나는 무턱대고 시라는 것을 쓰기만 하면 되었지 맞춤법에 맞게 이것저것 갖춰야 되는 것인지는 꿈에도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글자 그대로 강원도 어촌에서 올라온 낫 놓고 기역자도 모르는 까막눈이었다. 내가 순간 속으로 제일 뜨끔하고 스스로 놀랐던 일은 이런 무지렁이로 시를 쓰려고 덤볐다는 자괴심이었다. "끅데"에서 "긁데"로 가는 캄캄한 내 무명을 긁어내는 순간이었다. 눈먼 장님이 개명하듯이 밝아오는 햇살이었다. 무지이면서 무지를 깨닫지 못하고 부끄러움이면서 부끄러움에 눈감았던 내 스무 살 젊음을 어찌 잊을 수 있으랴. 나는 지금도 그때에 가졌던 시의 부끄러움을 평생 금과옥조처럼 여기며 늘 시에서나 삶에서 매사 스스로를 돌아보며 한 발 낮추어 가지려고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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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 나무관세음
탁발 공양하는 스님들도 밥 시주 받거나 공양 때면 다른 스님과 함께 하는데 대처에 사는 소생은 늘 독방에 수감된 죄수처럼 이톨이다. 마음의 부처를 꺼내어 같이해도 외로운 것은 외로운, 별 용 뺄 재주가 없다. 그래 밥 때면 산을 불러다 같이 하며 월정사도 세우고 물가에서는 낙산사도 지으며 바다와 더불어 한 술 뜨다 말다 했지만 다 흐르는 구름이고 뒤집히는 파도의 거품이었다. 속은 내색은 안했지만 아수라처럼 들끓다 맥없이 입안에서 먹는 둥 마는 둥 우물쭈물 사라졌다. 그저 입은 벌려 밥은 넣지만 한 술 한 술이다 신음소리가 저절로 새어나오는 고행이었다. 그러다 밥 먹는 일이 너무 힘들어서 포기하고 살다가 그저 살자는 일이거나 매끼 습관처럼 자세나마 바로 하자고 결가부좌 짓자 무념무상, 나도 모르게 저절로 도 닦는 시간이 되었다. 부처님 모든 게 자기변명 같은 위로이지만 저는 부처님 모습 따라 사바세계를 건너며 밥을 먹습니다. 부처님처럼 안 먹어도 먹은 듯 배부른 밥 한 술 뜹니다. 나무관세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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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지독한 사랑
한 남자와 30년을 산 여자를 만났다. 새로 개간한 땅 쪼가리라고는 전혀 없어 보였다. 어디든 철조망이 쳐져 있고 독가스처럼 같이 산 남자의 침이 다 발라져 있었다. 마치 아이 적 땅따먹기놀이처럼 다 표시돼 있었다. 침범할 가능성이 있는 요소요소는 용케도 꽃잎을 중심으로 눈, 코, 입 어디든 빈틈없이 철저히 침을 다 칠해 놓았다. 갑호명령처럼 원초적인 본능이 작용해 있었다. 경계태세 이상무였다. 각개 격파해야 별의미가 없었다. 승전비는 고사하고 전리품도 없다. 내가 절망하여 그녀에게 물었다. 그 남자가 깃발을 꽂지 않은 미개척지는 어디냐고, 지금은 사랑할 시간, 새삼 무엇을 캐묻는 놈이 이상한 놈인, 사랑을 팔고 사는 세속에는 유명한 지침이 있다. 똥간에 왔으면 똥이나 싸라. 아무리 지독한 사랑이더라도 감안하고 모른 체 사는 사랑을 배우는 것이 속아 사는 세월이고 인생이고 팔자다. 남자의 신세 한탄 같은 어쩔 수 없는 지독한 사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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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는 일생 심장이 뛰는 소리로 쓰는 것이다. 심장을 쾅쾅 치듯이 노래하는 것이다. 그 소리 속에는 뱃놈의 기질로 자라게 한 내 고향 주문진 바다의 파도 소리도 있다. 세상을 뒤집을 듯 광폭하다가 조용히 잦아드는 파도소리도 있다. 시란 그런 울리미다.
시 소리는 아주 약하고 조용하게 마음에 젖어드는 울림이다. 내 시 쓰기는 시베리아 벌판에서 구원도 없이 죽어가는 패잔병이 아니었다. 그 끝도 없고 한도 없는 벌판에서 한 줄기 인간의 따듯한 불빛을 찾는 노정이었다. 남들이 시가 안 된다고 시가 아니라고 생각했던 일들을 시라고 생각하며 시를 써왔다. 작으나마 새로운 미학을 세우고 싶었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나는 시를 모르면서 그저 감정의 흐름대로 읊어왔을 뿐이다. 누군가 내 시를 일컬어 시가 아니고 한갓 넋두리라 해도 할 말이 없다. 그러나 일생 좋아서 한 일임에는 분명하다. 좋지 않으면 돈이 안 되는 짓거리를 예전에 하루아침에 작파했을 것이다. 시에 미쳐서 자신도 모르게 끊임없이 학대하듯이 채찍질하며 살아왔다. 나도 모르게 몰입하여 왔다. 아버지처럼 엄격하였다. 시에 거는 꿈도 있었다
-여적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