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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이역에서-이희국 영한 시집

김남권 2024. 7. 22. 08:27

간이역

이희국

몇 겹의 고요가 침목처럼 깔려 있다

이곳은
뒤를 돌아보지 않는 시간과
오래도록 바라보는 사라진 방향만 있다

철길이 모퉁이로 휘어지던 그때
하늘의 귀퉁이가 우두득 뜯어지고
허공이 다 젖었다

난청의 계절
시간은 귀가 어두워
먼 길 한 바퀴 돌아온 봄의 표정이
철길에 노랗다

접힌 마음은 어느 지점에서 환승했을까
떠난 이들은 아무도 돌아오지 않았다

뒷산 진달래가 붉은 손을 흔들고
기억의 간이역으로 또 누군가 스쳐간다

펴지지 않는 주름진 시간도 있다
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
묵향

밤이슬 연적에 가득 부어
오래도록 먹을 간다

온 밤 그려봐도
끝내 다 그리지 못했다

붓 닿는 자리마다
간절한 염원이 젖어 가고
한 촉 한 촉 그리움
향으로 번져나도

결국은 피지 못한 꽃으로 남아
빛을 향한 바람만
또 그리고 있다

그대와의 숱한 기억
먹물보다 짙은데
이렇게 그려 내지 못하는 것은
나의 기다림도
지쳐가고 있기 때문이다
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
이희국 시인은 그의 펜으로 우리에게 삶의 광활한 비전을 안겨 줍니다. 다양한 수사와 비유를 통해 저자는 존재의 위대함, 겸손과 사랑, 그리고 일하는 계급들의 비참한 삶을 독자에게 전합니다.
이희국 시인의 시들은 한국 문학뿐만 아니라 국제 문학을 대표할 만합니다. 그의 시는 종이 위에 적힌 단순한 말이 아니라 인류의 총체적인 변화를 요구하는 깊은 메시지입니다.
-안젤라 코스타 시인의 추천사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