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숙증
저 어리광 어쩔거나
봄, 중천이 되어도 한겨울인 양
꿈쩍도 않는구나
입하 앞두고야 슬그머니 떠보는 눈
솜털조차 나지 않는 저 철부지
벌써 꽃이 피었네
어느새 기웃거리는 벌, 나비
잎, 자라지도 않아 달거리부터 온
조숙증, 저 대추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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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마
한 달째 젖어 있는 칠월 온통 울음 머금더니
더 이상 견디지 못해 터지고 말았다
명치끝에 쟁여뒀던 울음 터질 때는 하냥 기다릴밖에
한없이 우울했다가 느닷없이 환해지는
국지성 소나기 퍼붓다 멈칫한 시간
한바탕 울음 쏟아지고 시침떼지만
물먹은 가슴 건드리면 맥없이 무너지는
강물은 조울증의 계절을 안고 벌건 흙탕물로 흘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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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이별
심장 한 쪽을 떼어냈다
나를 숨쉬게 하고 내 몸에서 피를 돌게 했던 너
오른쪽 늑골 아래 보호받아야 할
네가 떠났다
우심방이 사라진 몸을 육신이라 부를 수 있을까
기형의 가슴으로 살아가야 할 날들
늑골 아래에서
수시로 보내던 구조신호를
그때 왜 몰랐을까
욱신거리는 통증이 흔적으로 남아 있는 자리
떠나버린 한 쪽 심장, 이식도 할 수 없어
껍데기뿐인 몸이
물먹은 비구름처럼 무겁다
는개로 젖는 늑골 아래
낙수도 천 년 바위를 뚫는다는데
나도 천 년 고인돌로 기다리면
떠난 심장 새살 돋으려나
소나기처럼 소리내 울 수 없어
는개로 젖는 눈물
네가 떠난 자리 슬픔이 고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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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희 시인은 행복한 시인이다. 그가 지닌 시작 자산이 막대하기 때문이다. 불가에서는 모든 중생이 겪는 괴로움을 자신의 괴로움으로 삼는 자비를 일러 동체대비라 한다. 비유하자면 김영희 시인은 시로써 산천과 거기에 깃든 사람들과 동체적이라 해도 지나침이 없다. 그는 홍천이라는 불이不二의 땅에 지나가는 계절과 터 잡고 사는 사람들의 삶의 서사를 무제한적으로 퍼다 쓴다. 그것은 기계적이고 도시적 감성에 편중된 요즘의 시적 정서와는 달리 그가 속해 있는 산천의 일부로서의 자연스러움이자 농경적 세계관이 주는 동체적 생명력이기도 한 것이다. 이를 바탕으로 한 시인의 언어에 대한 염결성과 친연적 담담 넉넉은 시의 품격을 끌어올리고 독자에게는 편안함을 선물하고 있다.
-이상국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