벚꽃 그늘에 앉아
우미자
내가 처음 벚꽃을 보았을 때
세상에는 이렇게 희고 맑고 순결한
꽃도 있구나 생각했지요
그 꽃잎 속으로 한없이 걸어 들어가면
천상의 세계를 만날 것 같았지요
그러나 지상의 벚꽃 그늘에 앉아
그 꽃잎들 어깨에 받으며
바람 불어 낭창낭창 꽃가지도 휘어지는
그쪽으로 삶을 따라갔지요
내가 처음 그 사람 만났을 때
세상에는 저리도 희고 맑고 순결한
벚꽃 같은 사람도 있구나 생각했지요
벚꽃 길 한없이 걸어가다 보면
생각보다 먼저 마음이 가닿는 사랑
깊은 뿌리까지 내려가 꽃잎으로 피던 사랑
벚꽃 길 걷다가 가만히 그늘에 앉아
한없이 깊고 순결한 그의 생애를
꽃잎마다 새겨서 내 삶의 화첩으로 만들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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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과 한 알
가을 정원에 갔다가
떨어진 모과 한 알 주워 왔다
나무에서의 생을 마치고
푸른 잔디밭에 고요히 누워
스스로 장사葬事 지내려는 듯
아름다운 주검의 향내 풍겨왔다
함께 주워 온 붉은 잎으로
제단을 만들어 그 위에 모셔 놓으니
모과 한 알로 온통 노란 빛
거실은 햇빛을 받아 눈부신 가을이다
이승을 하직하는 모과 한 알
그 빛, 이토록 찬란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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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을 품다
바람은 제 홀로
만 리를 흘러도
바람도 함께 흐르고
강물은 저 혼자 흘러가도
강변의 모래알을
보듬고 흘러간다
사랑은
사랑을 품고 흘러서
더 깊은 바다가 되고
사람은
사람을 가슴에 담아야
비로소 한 생애의 기슭에 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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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죽음 앞에서는 경건하다. 바람에 사라져 가는 것들은 살아오면서 겪은 사랑이며 그리움이며 이별 후의 상처다. 그것들 다 비워내고 만다라 꽃 한 송이로 피어날 것이라는 이 가볍지 않은 사상 앞에서 이 시집의 모든 시편들이 엎드리리라. 그리하여 아직 남은 날들 앞에서 잘 살다가 가야겠다는 다짐을 스스로 엄숙하게 가져보리라. 이 시집을 읽은 독자는 한 번뿐인 삶을 경건하게 받아들일 것이라 믿는다. 그리하여 제 일생의 꽃을 활짝 피웠으면 한다.
-문정영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