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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까만 울음을 문지르면 밝은이가 될까-김밝은 시집

김남권 2024. 6. 29. 07:46

발라드 오브 해남 1

김밝은

목소리만 남겨놓은 그 사람이 떠나갔다

유난히 길어진 눈썹달이
발라드라도 한 곡 불러주고 싶은지
전봇줄 레와 미 사이에 앉아 있다

채우지 못한 음계를
바닷바람이 슬그머니 들어와 연주하면

허공을 가득 메운 노을과
나만이 관객인 오늘

시가 내게 오려는지
그만, 당신을 잃어버렸다
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
어떤 날은 그림자가 더 편하다

살구나무가 등을 살짝 굽힌 채
큰길 너머 사잇길에 눈길을 주고 있었다

비켜서지 못한 바람이
울컥 치미는 향기를 쥐여주고 감쪽같이 사라졌다

잠깐 마음이 휘청거렸지만
아쉬움이 묻은 얼굴을
파란 하늘에 보여주기 싫어 고개를 숙였다

모든 것이 정지된 화면처럼 가슴에 와 박혔다

오래 걸었던 풍경이 천천히 뒷걸음질 쳤고
익숙해진 인연도 여기까지라고 몸을 돌려 뒤돌아갔다

동백꽃이 툭, 툭
죽비를 치며 떨어지던 날이었다
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
가파도라는 섬

아무도 모르게 껴안은 마음일랑
가파도 되고 마라도 되지
어쩌면 무작정 가고파도일 거라는 말

고개를 저어도 자꾸 선명해지는 너를 떠올리면
구구절절한 사연들이 함께 달려와
아득해진 장다리꽃의 옷자락을 잡아당기곤 하지

바람을 견디지 못한 이름들은 주저앉아버렸고
청보리는 저 혼자
또 한 계절을 출렁이고 있는데

어루만지다 쓰다듬는다는 말이
명치에서 덜컥 넘어지기도 하는지
곱씹을수록 까슬까슬해지는 얼굴도 있어

보고파,라는 말을 허공에 띄우면
대답이라도 하듯, 등 뒤에서 바짝 따라오는
파도의 손짓까지 뜨겁게 업은 너

심장에 가까운 말* 한 마디는 어디에 숨겨놓은 것일까


*박소란 시인의 시집 제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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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밝은 시에서 사유의 세계는 매우 절절하다. 아마도 그의 경험 세계에 아픔이 자리 잡고 있으면서 삶의 굽이굽이에서 돋아오르기 때문이 아닐까 한다. 그러나 시인은 담담한 어조로 시를 엮어내고 있다. 감정을 절제하고 발효시키는 능력이 탁월하다. 그의 시가 격조를 유지하고 있음은 그런 까닭일 것이다.
김밝은 시인은 가버린 시간을 현재로 끌어들이거나 늘여내어 눈앞으로 가져오기도 한다. 이 또한 그의 상상의 힘이 그만큼 장대함을 의미한다.
신선한 시각으로 사물을 대하면서 내면의 본질을 들여다보고 참신한 언어 감각으로 조탁하여 다듬어냄으로써 그 특유의 언어 미학적 성과를 잘 거두어 냄도 그의 장처라 할 수 있다.
-문효치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