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화
이화인
마지막 가는 길이 저리도 가벼울까?
저녁노을에 하루를 마무리하는 새의 혀처럼
열두 살 계집아이 벙그는 젖꼭지처럼
달빛을 머금고 화들짝 꽃을 피우더니
갈 길이 멀다고,
아무런 걸림이 없다고,
동안거冬安居 마치고 나서는 산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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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일
내 생애에서 가장 길일은
생일날이 아닌 내가 죽는 날
태어날 땐 나도 모르게 나와
억울해 많이도 울었지만
죽는 날은 내가 알고 가는 날
이승에서 지은 죄 죄다 마무리하고
그래도 남는 죄는 곱게 싸서 가시 등에 업고
봄바람에 꽃잎 지듯 그리 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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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의 경전
바람이 불면 나무는 전생을 기억한다
비바람이 치는 날이면
나무는 전생의 기억을 기록한다
바람의 힘을 빌려 경전으로 기록하지만
해독하는 사람은 없다
전생을 다녀온 사람이 전생을 기억하고
전생을 기억하는 사람이 경전을 기록한다
나는 오늘도 포장마차 불빛 아래에서
바람의 경전을 기록한다
늦은 밤 포장마차에서 별을 찾는 사람만이
별들도 외롭다는 것을 안다
별들도 전생을 기록하는 것을 안다
별들이 어둠 속에서 깜박이는 것은
전생의 기억 속에서 헤매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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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를 쓰는 일은 축복이다
시집을 낼 때마다 후회하지만
시집을 내야 한다는 강박관념이 더 컸다
어떤 시는 매번 기회를 놓치고
이십 여년만에 시집으로 들어왔다
다시, 봄이다
새들이 새벽부터 시를 물고 와 단잠을 깨운다
제주에 사는 새들은 부지런하다
-시인의 말 [전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