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과 제네레이터
깅정범
하늘에 나무를 심고 싶었어
둥근 눈의 식물이 자라나
플레이아데스 신성을 향해 줄기를 뻗는 것을 그렸었지
살아 있다는 건,
전기로 피었다가 이끼로 말라가는 것
물 위에 나무를 심는다
둥둥 떠다니는 나무가 실뿌리를 내리면
따뜻한 전류가 흐르게 될까
기름기 가셔낸 하늘,
탄피 사라진 흰 모래밭
그 위를 맨발로 걷고 싶어
쇠공이 굴러가는 도시에 나무 엔진을 돌리고 싶어
푸른 잎새 속의 공포를 보여줄게
꿈이 바이러스를 뱉어낸다
심장의 제네레이터에서 쏟아져 나오는 전류들
대기의 쟁반에 뿌린다
쇠붙이에 촘촘히 박히는 별의 못,
물빛에 젖는 부식토,
지구 식물의 삼바 춤과 살아 있는 악기들
이 지상에서는 언제쯤 연기가 그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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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올렛과 옐로
아니에요, 바이올렛이에요
아무 잘못도 없었어요
빵을 먹을 때면 달의 분화구가 떠올라요
커피에 노란 설탕을 넣자
에그프라이가 된 달이 꿈틀거렸죠
그 움직임을 따라
홍차 빛 햇살이 사선으로 부서졌어요
어느 배고픈 작가가 썼어요
뜨거운 물로 고문한 노른자 같은 달
제발, 오믈렛에 토마토 케첩은 넣지 마세요
파리한 벽에 달라붙는 붉은 치마
나폴거리다가 떨어지는 살의 껍질
달의 기억을 삼키면 쓰디쓴 위액이 찰랑거려요
옐로는 바이올렛의 그림자
앙상한 주름의 굴곡이 보여요
달의 눈빛은 아직 살아있죠
옐로 하우스, 옐로 비치
아메리카 탱크에 깔리던 보름달
커튼 뒤에 숨어 있는 니폰, 질긴 거짓말
그들에게 지워지지 않는 옐로카드를 던져줄 거에요
잊지 마세요, 자줏빛 입술의 꽃
비명보다 날카로운
바이올렛이에요, 그녀의 이름은
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
아메리카-노
암갈색 문을 열면 초록빛 인어가
피아노를 치며 노래의 물을 뿌린다
유혹의 꼬리에서 커피가 흘러나와
부드럽게 내 혀를 적시는 동안,
에티오피아의 햇빛과 그늘 사이에서
바구니를 든 어린 꽃잎이 맨발로 걸어 나온다
내 목을 찌르며 넘어가는
뜨거운 과즙의 밀도, 물의 가시
꽃잎은 인어를 향해 손을 흔들지만
붉은 열매는 거대한 그물 속으로 빨려 들어가고
손바닥에는 몇 개의 동전만 남는다
해가 지지 않는 집에서는
꽃향기가 커피콩과 함께 구워진다
분쇄기 안에서 갈리는 영혼에 대하여
나는 모순된 가책을 느낀다
소리없이 키피 나무는 잘리고
멈추어 선 아침이 여과지를 통과하며
하늘에 붉은 향기를 뿜는다
잔 속에 앙금으로 가라앉는
부스러진 지문, 꽃잎의 손
나는 인어의 도시가 그려진 머그잔을
가만히 폐기 봉투에 집어넣는다
까르르ㅡ
말라붙은 꽃잎의,
검은 웃음소리가 들린다
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
마트에서 카트를 밀며
그린란드의 얼음이
카트 속으로 끝없이 떨어졌다
내 손가락의 관능은
흰빛을 포장해 바구니에 담지만
불탄 나무 파편과
기름내 번지는 갯벌만 쌓인다
일본산 칼이 지나간 다음
나는 한쪽 아가미를 잃은 어류의 비늘을 더듬었다
티가든의 별에도
세슘 흙 속에 사는 물고기가 있을까
적재물이 비틀거린다
울렁대는 공기가 카트의 남은 부피를 채운다
카운터에서 밀어낸 비닐 덩어리는
스티로폼 속으로,
뜨거운 박스 속으로 다시 사라졌다
물 흐르는 소리가 카트 안에서 들린다
나는 부식된 손잡이를 꼭 쥔 채
꼼짝없이
차가운 산소 구름으로 떠 있었다
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
부겐빌레아 입술
아무 잘못도 없는데
높은 담장에 숨어 나를 겨누고 있는
수천 개의 붉은 총구
나는 삭아버린 일기장을 뒤적거리다가
압화 하나를 꺼낸다
너는 잎사귀
내 기억은 꽃잎
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
시인의 상상력은 지구촌의 시민으로서 살아간다는 의식을 배경으로 지구 행성의 차원에서 펼쳐진다.
시간과 공간의 차원에서 무한한 시적 공간을 확장하고 특히 현미경과 망원경의 관점을 조합함으로써 그 시적 공간은 넓어지고 깊어진다. 이러한 비약과 도약, 혹은 정밀화와 초침화의 전략과 함께 콜라주라든가 몽타주, 그리고 포밀리즘 등의 작시술을 통해서 시인은 자신이 지닌 지구 행성의 위기에 대한 페시미즘적 세계관의 형상화를 위한 표현 효과를 극대화하고 있다. 그리고 상처와 폭력, 죽음과 파괴로 얼룩진 지구 행성의 현실을 낱낱이 폭로하고 그 묵시록적 비전을 암담한 어조로 제시한다.
-황치복 문학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