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영미 시인의 첫 시집 "서른 잔치는 끝났다"는
1994년 초판1쇄를 발간한 이후 2014년까지 51쇄를 찍었고, 개정판 8쇄, 2023년 3판 5쇄를 발간했다.
최영미 시인은 1992년 창작과비평에 시를 발표하며 작품활동을 시작해 꿈의 페달을 밟고, 돼지들에게, 도착하지 않은 삶, 이미 뜨거운 것들, 다시 오지 않는 것들, The Part Was Over, 공항철도와 소설 흉터와 무늬, 청동 정원, 산문집 시대의 우울, 화가의 우연한 시선, 아무도 하지 못한 말 등이 있다.
첫 시집의 기억을 살려 최근에 새로 나온 개정판 시집을 읽었다. 좋은 시는 언제나 감동을 준다.
선운사에서
최영미
꽃이
피는 건 힘들어도
지는 건 잠깐이더군
골고루 쳐다볼 틈 없이
님 한번 생각할 틈 없이
아주 잠깐이더군
그대가 처음
내 속에 피어날 때처럼
잊는 것 또한 그렇게
순간이면 좋겠네
멀리서 웃는 그대여
산 넘어 가는 그대여
꽃이
지는 건 쉬워도
잊는 건 한참이더군
영영 한참이더군
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
서른, 잔치는 끝났다
물론 나는 알고 있다
내가 운동보다도 운동가를
술 보다도 술 마시는 분위기를 더 좋아했다는 걸
그리고 외로울 땐 동지여!로 시작하는 투쟁가가 아니라
낮은 목소리로 사랑 노래를 즐겼다는 걸
그러나 대체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잔치는 끝났다
술 떨어지고 사람들은 하나둘 지갑을 챙기고
마침내 그도 갔지만
마지막 셈을 마치고 제각기 신발을 찾아 신고 떠났지만
어렴풋이 나는 알고 있다
여기 홀로 누군가 마지막까지 남아
주인 대신 상을 치우고
그 모든 걸 기억해내며 뜨거운 눈물 흘리리란 걸
그가 부르다 만 노래를 마저 고쳐 부르리란 걸
어쩌면 나는 알고 있다
누군가 그 대신 상을 차리고, 새벽이 오기 전에
다시 사람들을 불러모으리라
환하게 불 밝히고 무대를 다시 꾸미리라
그러나 대체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
혼자라는 건
뜨거운
순대국밥을 먹어본 사람은 알지
혼자라는 건
실비집 식탁에 둘러앉은 굶주린 사내들과 눈을
마주치지 않고 식사를 끝내는 것만큼 힘든 노동이지
고개 숙이고
순대국밥 먹어본 사람을 알지
들키지 않게 고독을 넘기는 법을
소리를 내면 안 돼
수저를 떨어뜨려도 안 돼
서둘러
순대국밥을 먹어본 사람을 알지
허기질수록 달래가며 삼켜야 해
체하지 않으려면
안전한 저녁을 보내려면
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
최영미는 여성시의 다양성이라는 공간 확장에 개성적으로 기여하고 있다. 개성적이라는 것은 최영미가 청춘과 운동, 사랑과 혁명 같은 서로 이질적인 요소들을 자신의 구체적인 삶 속에서 질퍽하게 하나로 동화시켜가는 궤적을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궤적에는 불가피하게 싸움들이 끼어든다. 그 싸움의 대상들은 부조리한 사회일 수도 있고, 그 부조리한 사회에서 어떤 종류의 것이든 권력을 쥐고 있는 남성 전반일 수도 있다. 그의 시들은 어떤 싸움의 기록이다. -최승자 시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