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춘 아침
박성규
서너 해가 넘도록 숨어 지냈더니
죽었는지 살았는지 궁금하다머
여기저기서 들쑤셔댄다
무소식이 희소식이라며 맞장구치지만
반가운 마음보다 성가신 것으로 봐선
면벽 수행이 부족했나 보다
눈만 뜨면
움이 얼마나 떴는지
숨은그림찾기 하듯 들여다보는 땅바닥도
조용한 것을 보면
아직 봄이 오지 않았다고
마음을 쉬 정리하곤 하지만
그래도
순리대로 돌아가야 하고
순리에 맞는 결과가 있을 거라고 믿는 마음 덕분에
헛걸음이라도 마음 상하지는 않지만
인因이 있었으니 연緣이 있다는 말을 믿는 지금
기다림도 수행이라 여기며
아침 햇살을 반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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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편물
토함산을 넘어온 해가
얼굴에 닿아야만 일어나곤 했는데
오늘은 개짓는 소리에 화들짝 놀라서
그만 눈을 뜨고 있다
뭔 일이 있었나 싶어
현관문을 열고 나가니
우체부가 다녀가고
택배차가 다녀갔었다
세상 소식은 별로 궁금하지 않지만
간간이 받아 든 시집 속에서 사람 냄새를 맡다 보니
내 소식 궁금해하는 이도 있을 거라는
상념에 빠져들다가도
이내 아무런 일 없었다는 듯
이불 속으로 들어가려는데
아직은 때가 아니다 싶은지
이불 속으로 다시 들어갔더니
미라 한 구가
나를 빤히 쳐다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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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를 삼켰다
더워서
할딱 거리다가
입을 벌리고
숨을 몰아쉬던 중에
하루살이 서너 마리
통째로
목구멍을 통과했다
하루를 삼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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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그럽기 그지없는
겨울 초입
금방 비가 올 것 같고
금방 눈이 내릴 것 같다
팥 타작도 해야 하고
콩 타작도 해야 하고
무도 뽑아 저장해야 하고
질금도 담가야 하고
메주도 쒀야 하고
오그락지도 만들어야 하고
김장도 해야 하는데
바람조차도
마구잡이로 불어 재낀다
짧은 하루
상그러운 가슴만 끌어안고
날씨만 탓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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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성규 시인이 이 시집을 구상할 때는 일상의 기록으로 일상적 자아를 초월하는 시 의식을 보여주고자 했을 것이다. 의식은 시간의 경계를 거뜬히 넘어서기에 시인은 체험일 수밖에 없는 사건들과 내면의 갈등을 확장해서 기록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TV는 정보의 터미널로써 기능을 하지만 때론 전혀 신뢰할 수 없는 정보를 송출하는 바보상자가 되기도 한다. 하지만 시인은 우연히, 자세가 아니라 그 이면을 보라는 소리를 들었고 깨달았기에 고맙다고 큰 인사를 나눌 수 있게 되었다.
박성규 시인의 이후가 한 걸음 더 부처와 같고, 또 한 걸음 더 세상의 어떤 동행들과 가까워지기를 기대해 본다.
-고영 시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