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가 고파요
정유경
아빠는 술을 술술 마시더니
술의 세상으로 건너가버렸어요
아빠가 잠깐 이 세상으로 돌아올 때도 있었어요
멍하게 나를 바라보다 금방 떠나버리긴 하지만요
제 이마의 흉터요?
아빠가 던진 쓰레받기에 맞은 거예요
피가 샘물처럼 퐁퐁 솟아났지요
아니에요 아빠는 나를 때린 게 아니에요
아빠는 아빠를 때린 거래요
비밀을 지켜줄래요?
시뻘건 불을 뿜는 화산이 내 안에 있어요
아빠에게 맞은 아빠가 끝도 없이 뿜어내는 불덩이요
그러니까 내 곁에 가까이 오지 말아요
다친다니까요
나는 맨날 배가 고파요
아빠가 고파요
먹을 것 좀 주세요
아빠를 좀 주세요
아빠가 아빠를 안 줘요
빌어먹을
아빠가 보고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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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의 아이
태풍이 또
내 깊숙한 곳을 뒤집어놓았다
집을 나가야겠다
돌아온 지 한 달
누구의 것이든 상관없다 돈을 챙겨야 한다
또다시 돌아오겠지
그러나 귀가는 아니다
그곳으로부터 이곳으로 흘러오는 것뿐
엄마는 본디 바람이었다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가
소식도 없이 내 앞에 서 있곤 했다
엄마가 넣어준 바람이 내 혈관 구석구석을 돌아다니지
구멍이 숭숭 뚫린 몸속에서부터
발밑 허공, 그 너머까지
사람들이 있는 곳에서는
내 몸뚱이를 어디에 두어야 할지 모르겠어
곧 떼어내야 할 껌딱지나 묵은 때 같아
빨리 사라져야 할 의무, 그 절박함이라니
그래서 나는 자꾸
사라진다
바람처럼
엄마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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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매 병동
천지사방 구분도 없이
뛰어 달아나는 몸과
사투를 벌이는
밤
그토록 가고 싶었던 그 길을
끝내 가지 못하게 막았던 머리가
잠든 사이
몸이 탈출을 시도한다
명령만 하던 영감님
헐레벌떡 달려와
처음으로
아내 명령을 받는다
머리는 아무것도 모른다
몸의 마음은
몸만 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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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유경의 사회적 상상력은 "천 개의 가시가 되어/어른들의 가슴을 찔러다오"라고 역설하며 세월호 참사를 안타까워하고 베이비박스에 버려지는 영아의 앞날을 예감하거나 학교의 부당한 처사에 항의하는 학생들을 응원하고 급기야 모든 상품을 섹시하게 포잠하는 것도 모자라 지구를 섹시하게 디자인하는 자본주의를 비판한다.
이처럼 정유경의 시는 감각적 지각에서 이성적 인식에 이르기까지 스펙트럼이 넓다.
-이문재 시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