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테고리 없음

벽화 속을 걷다-백일석 시집

김남권 2026. 7. 11. 08:08

난청 1

백일석

소리가 소리를 잡아 먹는다
배가 고픈 날은 폭식도 한다
탈이 나면 버림받고
방황하는 꿈을 꾼다
흘러간 세월에 잘 길들여졌지만
외로움은 바람 잘 날 없다
어느 날 모둠으로 차려진 상한 것들 때문에
세상 밖으로 달아날 기회도 있었지만
우울을 베고 누워
한 주먹 삼킬 뻔한 찰나를 물리치고
생명 안에 눈물을 가두었다
참호 속 전쟁을 치르느라
인내는 팔이 잘리고 침묵은 화상을 입고
의지는 다리가 잘렸다
헐떡이는 목숨 너머 모진 의식만
야망에 찬 숨소리로 살길을 물었다
감추려고 해도 새어 나오는 아우성
건너지 못하고 바라만 보는 길목에서
아직도 목놓아 우는 숱한 시간들이 꿈틀거린다
살아 있어서 익숙해져야 하는 불편함
견뎌야 하는 삶의 무게만큼
고독이 성장한다
밖을 나서면
수많은 나무와
수많은 풀들과
수많은 꽃들!
오늘도 하루의 기적이 그 안에 있다
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
만항재의 벗들

'어서 와 반갑다'
해발 1,330미터
자동차로 오를 수 있는
가장 높은 자리,
이곳에 사는 친구들이
초면에 격하게 반긴다
이름도 모르는 야생화 군락 위로
전해지는 나비들의 평화로운 노래
신난 산새들의 자유로운 코러스
침엽수와 활엽수의 산소뿜기대회
수십 번의 수채화를 남기고 간 석양은
자화상을 그리는 시인들의 말솜씨에 어우러져
어울렁 더울렁
사는 맛이 진국이다
달빛 아래서 시를 읽고
막걸리 한잔에 취해 옥수수로 연주하는
여름 환상곡을 듣는다
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
원주에서 달빛문학회, 달무리동인회, 강원아동문학회 회원으로 활동하고 있는 백일석 작가의 첫 시집 "벽화 속을 걷다"가 P.S미래시선으로 출간되었다. 올해 초 계간 연인 신인문학상을 받으며 문단에 나와 강원문화재단의 장애예술인 지원사업에 선정돼 시집을 선보이게 된 백일석 시인은 오랜 습작 기간을 거쳐 수백 편의 시를 쓴 전력을 가지고 있다. 김남권 시인은 해설에서 "백일석 시인의 첫시집 벽화 속에 걷다 속에 나타난 시어들은 생의 침묵과 절규 사이를 넘나드는 함축과 절규를 웅변하고 있다. 제3자의 시선으로 관조하는 것이 아니라 화자의 내면으로 들어가 느끼고 경험하고 뒹굴며 보고 기억해야 할 언어의 행간을 "침묵에서-저항으로" 빼곡하게 채우고 있는 것이다.
다 닳은 신발을 신고/가보지 않은 길을 걷는다//우주의 시작에서/삶의 끝자락에 왔어도/방랑은 끝이 없다//안갯속에서 머무른 시간들이/더듬거린다//무소유를 생각하다 놓친/갈림길이 천 갈래 만 갈래다//봄이 오는 길목/꽃의 노래를 들으며/치유의 길을 걷는다("벽화 속을 걷다" 전문)
단어와 단어 사이, 문장과 행간 사이를 지나오는 동안 펼쳐지는 여백을 통해서 자기 생을 온몸으로 겪어낸 속울음을 토해내고, 당신도 한번 느껴보라고 가랑비처럼 속삭이며 젖어들게 하고 있다.벽화 속을 거닐다가 별을 만지기도 하고 거미줄에 걸린 시간을 침묵으로 건져내 통조림 속에 가두기도 한다. 그리고 궁극적으로는 그것들로부터 탈출하는 것이 아니라 공존해야만 할 수 있다고 무언의 압력을 넣고 있다. 시인의 언어가 주는 침묵을 통해 삶의 너머를 바라보라는 고요한 외침을 전하고 있"다고 밝히고 있다.
매주 혈액을 투석하며 일을 하고 시를 쓰고 있는 백일석 시인은 시가 자신을 살게 하는 가장 큰 원동력이기에 지금이 가장 행복하다고 소감을 피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