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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끼리와 행신동 맥도날드-이만영 시집

김남권 2025. 11. 26. 09:19

창밖의 거짓말

이만영

비 오니까
네 생각난다고 쓴다

비 쏟아지니
우수수 솟아오르는 물고기의 뒷덜미

네 생각이 은빛 비늘처럼 돋아난다

창밖에 미끄러지는 비
유리창에 물고기를 그리고
너도 내 생각 하느냐고 지느러미처럼 물어본다

아니 묻지 않는다

나뭇잎 아래로 떨어지는 나무들
비를 움켜쥐었다가 바람 불 때 뿌려댄다

나뭇잎에서 싱그런 비 비린내가 난다고 말한다

아니, 모두 거짓말이라 해도 누가
나뭇잎을 나무라겠어

이유도 없이 흠뻑 맞는
나무와 비와 바람이 만들어 낸 합작품

레몬처럼 쏟아내도
좋아, 좋아

흠뻑 젖어 온 세상 너덜너덜해져도 괜찮아
누구도 나무라지 않을 거야

아니, 모두 나무라겠지

상관없어
다 거짓말인데 뭐

밤새 비 내려
머리부터 뿌리까지 아가미에 젖는 네 생각뿐이야

갑자기 빗방울이
내 뒤통수를 세차게 후려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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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상구름임신

모임중
누군가가 레몬티를 쏟았다

저 아닙니다

제가 아니라니까요
새콤달콤을 거부한 자가 범인이라여
회원들은
얼음이 떠다니는 커피잔에 나를 밀어 넣는다

한겨울에
아이스아메리카노 동호회 플래카드가 펄럭거린다

장화를 괜히 신고 나왔어
비 그친 오후
앏게 저민 햇살이 깔창 밑에서 찌그덕 찌그덕

치과에 들러 12월 날씨를 스케일링이라도 해둘까
공중으로 뛰어 오른 구름 조각들

시적인 것과 시답지 않은 것들로 편을 갈라
나누어지고

바람 없는 허공에는 이해할 수 없는 명문장들이
일등급 구름을 타고 다닌다

바삭바삭한 헛소리만 소금 찍어 먹다가

선배!
햇살을 솜사탕에 묶어 구름처럼 부풀리면
칼라풀한 장면들이 잉태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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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신동 맥도날드 1

누군가가 '왕국으로의 초대'라는 전단지를 손에 쥐어준다

저승이라는 후생의 문턱 앞에서 당신은 무엇을 어떻게 결정 지을 건가요

시답잖은 질문

죽어서 우린 어디에 모여 살 것인가

만일 우리 앞에 거대한 운석 덩어리가 떨어진다면
저 돌덩어리를 누가 치울 것인가

예기치 않은 정전에 오늘 아침 식사는 간단히
햄버거와 커피

빵과 패티 사이
등 굽은 새우 몇 마리와
까도 까도 끝없이 흰 살만 나오는 양파의 내면과
넙데데한 얼굴들

동창생 아들 결혼식에서 본 20년 만의 친구가 생각나서
수소문하니까 미국으로 이민갔다는
이야기

눈 부릅뜨고 지켜본다
흐드러지게 꽃 피어날 천국의 아침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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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만영의 시는 스펙트럼이 넓고 다채롭다. 소재가 다양하다는 것은 그만큼 창작에 대한 열의와 집중력이 대단하다는 증거, 지극한 노력 끝에 얻어진 결과로 첫 시집 '코끼리와 행신동 맥도날드'는 이처럼 경이롭다.
그의 시의 주류는 탄탄한 서정적 기반에 모던한 메타시의 전형을 다지는 것이지만, 미래파 시인들 못지않게 활달한 아포리아로 빛나는 사포리즘에 기반한 언어유희가 독자들을 놀라게 한다.
-김영찬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