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고와 고양이 그리고 파운데이션-남영희 시집
형이상학
-화성 나비
남영희
대기는 빛으로 가득 차 있었다
정원이 하나씩 생겨나고
거기 나였으면 좋겠어
그가 지구에서 홀연히 사라진 이후
금잔화가 피는 그 땅에서
날고 있는 네가 나였으면 좋겠어
지도를 펼쳐봐, 대기권을 넘어
너와 나의 살아 있는
일관된 메시지였으면 좋겠어
서로 부재중에
서로의 상징이었으면 좋겠어
지평선이 어둑할 무렵에도
내 날개를 흔들며,
보라색 꽃이 그려진 티셔츠를 입고
모두의 숨결은 단단한 지질에 녹으면서
계속 피어나는 꽃의
땅이었으면 좋겠어
(그것이 끝없이 이어지는 문이었으면 좋겠어)
그 별의 그리움, 너와 나의
아름다운
언약이었으면 좋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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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고와 고양이 그리고 파운데이션
며칠째 아침이면 울어대는 고양이, 새끼를 잃은 어미인가 어미를 찾는 새끼인가, 그런데 우리의 내면은 울음소리로 시작하는가
내가 지끈대는 편두통으로 망고의 속울음으로 파고들 때도, 침대 옆 스탠드가 몽유병자처럼 불빛에 끌려 나가고 방은 침침하다
우리는 어디에 살거나 자신의 내면에서 벗어날 수 없다 그러면서 한 몸으로 묶이지도 않으면서 각기 서로가 서로에 애달프다
우리의 신념은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에 있다 이대로 지속된다면 우리는 실패한 내면의 적인가?
모든 것에는 자아가 있지만 잠재력에는 차이가 있다 이상적이고 진정한 자아를 위해 삶을 이해하고 부디 우리를 용서하길,
눈썹, 아이섀도, 립글로스가 떠오르는 또 다른 페이스 내 얼굴엔 먼저 파운데이션을 발랐다
-거울 속 여자에 대해, 더 오래 기다리거나 견뎌야 한다 만성 질환에 지치지 말자 살아 있지 않은가, 심지어 내면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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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
나는 내 언어로 싹을 틔워야 한다
얼음장이 녹고 그늘마저 녹고
겨우내 모든 아우성이 묻히고
그렇듯 이런저런 형벌이 지워지고 난 후의
자리는 새롭다
신선한 아침이 고랑에 머물기 시작한다
새잎이 경외의 마음을 가지는 때다
보렴, 새로운 세대의 친근함
친화력이 자꾸만 생기는
자아마다
시의 씨앗이 충분히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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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영희의 시들은 바로 이러한 시의 회복을 보여준 것이다. 주체의 결여를 그 자체로 감내하며 이끌어낸 위로 앞에 우리를 초대하는 작업이 남영희의 시적 여정의 근본적인 목표였다. 이러한 남영희의 성취는 고요하게 우리 앞에 왔다. 주체의 결여가 현존으로 우리에게 주어지며 이것이 우리를 삶의 생기로 되돌려 주고 있음을 노래하는 시는 현대 서정시의 근본을 탐구하는 작업이다.
남영희는 그 누구보다 더 이러한 서정시의 근본에천착한 시인이다. 이번에 펴낸 신작 시집이 이러한 남영희의 시적 여정에서 빛나는 이정표가 될 것임은 분명해 보인다.
-김학중 시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