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는 몇 층입니까-성금숙 시집
저녁의 산책로
성금숙
오늘은 괜찮니,
문자가 왔다
답장을 보내고
천변 산책로에 간다
오리는 저녁에도
멈추지 않고
수면 아래 물살을 헤친다
산다는 것은 움직이는 것이구나
접시꽃이 꼬무작거리며
꽃문을 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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궐기
단호하게
비가 그치지 않아서
불법적인 희망을 철거시켰다
말라붙은 얼룩을 문지르면 충혈되는 손
주막에서 꺼낸 못을 게으른 벽에 박고
펄럭이는 결심을 걸었다
죽은 화분에 물을 주었다
저지르고 싶은 희망이 싹처럼 돋아나
날짜를 한 장 한 장 뜯고 기다렸다
눈을 감으면
빽빽이 불어나는
빚더미처럼
개나리꽃들이 눈을 당겼다
불법이던 희망의 잔해들이
빈 깡통처럼 굴러다니는 골목으로
바람을 앞세워 떼 지어 몰려오는
미래의 초록군단
연두주먹을 작은 깃발처럼 흔들며
구령에 맞춰 힘껏 전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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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화
뜨거운 국밥을 먹다
입천장을 데었다
벗겨져 쓰라린 곳을
입 벌리어 거울에 비춰보는데
당신은 뒤돌아 앉아
신발을 가지런히 정리한다
배고파서
영산홍이 또 피었다
깨진 거울 속에서
좁쌀처럼 돋는 통증
이번 생은
손깍지 낀 채 살다 먼저
바다에 닿아 읍揖해야겠다
성호를 긋고
거룩하게
나를 소등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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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금숙 시인의 작시는 문학적 트라이앵글을 압축하고 녹이는 과정과 다름없다. 이를 통해 시는 수태를 기다리는 생의 충만한 의지를 담는다. 발아된 그의 문장은 인간이 가질 수 있는 감각과 사유의 한계를 무너뜨리고 너머를 향해 나아간다.
시인은 멈추지 않는다. "이곳을 빠져나가/까마득한 눈의 세계를 질주해볼까/끝없이 발자국을 남기고 내게서/열렬히 멀어져볼까/더운 김을 내뿜으며"(나를 망보는 저녁), 또한 "모이고 흩어지는 구름을 따라/흩어지고 모이는 명령을 따라/나를 넘고 너를 넘고 우리를 넘어/불가능한 벽과 높은 철책을 넘어보자//명랑이 모인다/명랑이 드넓어진다 송이송이/명랑이 익어간다"(가능한 구름의 명랑)면서 이를 충의롭게 모색한다.
이를 우리는 작품과의 혼연일체로 명명해도 되겠다. 물론 성금숙 시인이 가진 문장의 매력 중 하나다.
-박성현 시인 문학평론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