벼름빡 아고라-한상대 시집
개 같은 마누라
한상대
야생성은 심심찮게 나타나며
인간에게 친숙하다
돈 냄새를 잘 맡고, 귀가 밝아
나의 까치발 귀가를 놓치지 않는다
사고를 쳤을 땐 급 순해진 눈빛으로 날 쳐다본다
잘 짖지만
잘 짖는다고 좋은 개는 아니지
짖을 때도 물기까진 하지 않는다
대개는 아침에 나갔다가 저녁이면 기어들어 온다
간혹 밖에서 자고 소리 없이 들어와 있기도 한다
데리고만 나가면 환장한다
드물게는 나를 보호해 줄때도 있다
평소엔 충성스러운 편이지만 내가 배신했을 땐
피 튀기는 복수를 각오해야 한다
서열이 나보다 윈 줄 안다
내 기분을 어느 인간보다 잘 알아준다
만져 주면 좋아한다
나를 개 취급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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벚꽃 유감 2023
벚꽃 저년
인제군 서화면 천도리 황제다방 강 양 같은 년
헤픈 웃음
사방 흘리고 다녔던 년
누굴 꼬셔 보려고
분칠하고
목젖이 보이도록 웃고 있나
기왕 줄거
홀랑 벗고 준다던 년
기왕 갈 거
흔적 없이 간다던 년
기다리지 않아도 오고
애태우지 않아도 올 년
지천을 반란처럼 휩쓸고
운동장만 한 빈 가슴 남겨 놓은 년
너 그렇게 갈 줄 진즉 알았다
잘 가라 미친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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맨발 걷기
손보다 흰 발등이
땅 위에 드러났다
햇빛이 눈부실 때
발등도 희게 빛났다
이래도 됐는데 이랬어야 했는데
이러면 안 되는 줄 알았다
한 발 두 발 부끄럽게 내디디니
열 개의 발가락이 기지개를 켠다
만세를 부른다
지구의 입김이 온몸에 스며든다
살 것 같았다
산 것 같았다
이제 맨발을 선언하니
얻는 건 자유요, 잃은 건 습한 감옥이다
버린 건 억압이고,
되찾은 건 야생이다
소금 하나 바다에 빠져 바다가 되었듯이
신발 하나 벗어 던지고 지구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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벼름빡 아고라
안 되면 되게 하라
특전사 출신 아빠가 써 붙였습니다
하면 된다
해병대 출신 아들이 댓글을 답니다
되면 한다
군대 안 간 딸이 대댓글을 답니다
해보긴 했나
엄마가 댓글을 씁니다
일하지 않았으면 먹지도 말자
교회 다니는 엄마가 써 붙였습니다
많이 먹고 열심히 일하자
아빠가 썼습니다
적게 먹고 조금 일하자
밑에 아들 댓글이 달렸습니다
조금 먹고 많이 싸자
딸이 썼읍니다
자기가 먹은 밥그릇은 자기가 씻읍시다
엄마가 싱크대 위에 써 붙였습니다
그 밑에 아빠가 써 놓습니다
설거지도 웃으면서 하면 놀이가 됩니다^^
아들도 그 밑에 씁니다
안 하는 게 더 즐겁습니다
딸이 썼습니다
즐거운 건 양보할게요
-효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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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이 지나도 시의 정의는 변하지 않는다 우리가 현재 포노사피엔스시대를 살고 있다고 하더라도 이천삼백 여년 전에 아리스토텔레스가 인류 최초의 시를 쓰면서 제시한 비유 상징 이미지가 심상으로 그려지는 현상에 대한 의미가 바뀔 수는 없다. 자칫 낯설게 하기라는 명목으로 시의 정의가 무너지고 시의 본질이 훼손된다면 그것은 시가 아니라 그냥 말장난에 불과할 것이다. 아무도 그 뜻을 이해하기 힘들고 아무도 그림이 그려지지 않는 언어유희만 있다면 겉은 화려한 옷을 입었지만 속은 텅텅 빈 무늬만 사람인 그런 형국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한상대 시인은 자신의 남은 생을 다하여 이런 시의 정신에 귀 기울이고 경계하며 더욱 빛나는 시의 지경에 도달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지금처럼 풍자와 해학, 진심을 견인하는 사유로 끊임없이 마음의 행간에 꽃수를 놓는 뜨개질을 멈추지 말아야 할 것이다.
-김남권 계간 시와징후 발행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