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명-고종목 시집
지느러미 조각
고종목
조각에 지느러미를 단다
지느러미는 조각의 고독한 그리움이다
날개를 달고 마음껏 헤엄쳐
먼 하늘을 가르고 나아가
지느러미의 시원에 닿고 싶은 꿈을 낚는 것
조각은 그 꿈을 조각보에 꼭꼭 싸 감추고 싶지만
숨소리까지 숨길 수 없어 파도와 싸운다
그 두려움은 노래해도 고독을 지울 수가 없다
섬 조각은 기다림에 지치고 젖어
철썩- 처어얼썩 -
지느러미가 빈 섬을 노래한다
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
달빛이 그린 누드
달빛 창가
2월
찬 바람을 뚫고 피어나
비스듬히 누운
매화꽃 누드
낙관이 뜨겁다
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
변명 아닌 변명
새로 만든 조각보를 펼쳐 놓고 본다
미운 조각 하나 없는데
마음에 들지 않는 몇 놈 오리 새끼 보인다
시 한 편 쓰고 한숨이 절로 터졌다
가슴에 변명 이름표 달고 이마에 변명 딱지 붙이고
뒤통수에 변명 꼬리 달고 옆구리에 낀 채
입가에 번지는 뻔뻔스러운 미소 억누른다
발소리 숨소리 죽이고 다가간다
삶과 시 바느질 조각놀이로 즐겼는데
이것 장난 아니네
내가 나에게 변명 아닌 변명의
도전장을 내밀다니
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
한 조각 이루었다
그는 스스로 만든 틀 속에서 살았다
그의 패션 아이템은
늘 모자라는 쪼가리 이미지다
그는 생을 조각놀이로 즐겼다
그의 생에 맞춤형 기호를 비문에 새겼다
그의 죽음이 틀을 깨부수었다
세모 네모 동그라미 다각 속에서
그의 영혼이 걸어 나왔다
조각 하나에 온 산이 가을빛이다
한 조각 이루었다
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
섬 꽃
시의 영혼이 기어다닌다
일어서서 걸어 다닌다 뛰어다닌다
영혼의 몸인 시집을 벗어나 마음 가는 대로
언어의 파도가 넘실대는 바다로 나간다
팔딱팔딱 뛰는 생명을 먹고 영혼을 살찌운다
섬으로 건너간다
발자국마다 고여 피어나는
섬 꽃의 향기를 마신다
해 뜨는 아침 바다 윤슬로 피어난다
집이 있으니 영의 몸도 있다
집이 없으면 영의 몸도 없나니
내가 있는 곳에 시도 있고
시가 없는 곳에 나도 없나니
시여 꽃이여 사무치는 그리움이여
향기로 가슴에 안겨 오는 섬 꽃
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
고종목 시인의 시들은 그가 만든 조각보와 크게 다르지 않다. 그의 시어들은 조각난 단어들을 기워 새로운 의미를 만들어 낸다. 그것을 통해 고독한 존재의 그리움을 채워주고 세상에 쓸모 없이 버려진 존재들을 위로해 준다. 나도 누군가와 연결되어 아름다운 세상의 한 조각이 될 수 있다는 희망을 버리지 않게 해준다. 그의 소박한 시어들이 가진 힘은 바로 여기에서 나온다. 시인은 그런 자신의 시적 성취를 한 조각을 이루었다고 정리하고 있다. 조각을 이어 붙인 다각형 속에서 그 자신이 한 조각을 이루었다는 이 겸손과 상생의 정신이 그의 시의 중요한 바탕이다.
이 정신으로 그는 그리움을 엮어 이 아름다운 시집을 기워냈다.
-황정산 시인 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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