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詩는 자연이라는 악보에, 신화를 음표로 기록한 것이 아닐까 싶다. 분석심리학에 의하면, 우리 삶을 좌지우지하는 무의식은 집단무의식과 개인무의식으로 구성되어 있다. 집단무의식에는 민족의 역사가 응축되어 있고, 개인무의식에는 개개인의 성장 기록이
담겨 있다. 신화는 집단무의식의 알맹이라 할 수 있다. 신화를 불러들여 '지금ㅡ여기'의 숨결을 담아 진화시켜 나가는 것이 예술가의 캔버스다. 예나 지금이나 미술도 음악도 문학도 신화의 놀이터였다. 나는 시인을 다음과 같이 정의해 보았다.
자연이 작곡한
악보 속의
낮은음자리표
-김철교 [시인은] 전문
국어사전에 자연이란 사람의 힘이 더해지지 아니하고 세상에 스스로 존재하거나 우주에 저절로 이루어지는 모든 존재나 생태라고 정의되어 있다.
즉, 인간의 손을 타지 않은 우주 만물이다. 창조주의 손에 만들어진 인간도 자연의 일부다. 로봇은 인간의모습이어도 사람에 의해 만들어지고 운용되는 것이어서 자연이 아니다. 인간의 손에 의해 관리되는 질서는 자연이 아니요, 하나님의 섭리에 의해 관리되는 질서가 자연이다.
시인이 '자연이 작곡한/악보 속의/낮은음자리표'라는 것은 창조주가 세상을 만들고 다스리고 있는데
그중에 예술가는 낮은음자리표와 같은 존재라는 것이다. 우주 운행에 앞서서 휘젓고 다니는 존재가 아니라 창조주의 원리에 의해 살아지는 존재다. 높은음자리표가 중심인 음악에서 없어서는 안 될 존재가 낮은음자리표다.
-본문 21~22쪽 심재원의 봄 중에서
사랑은 만물의 근원이자 인간 삶의 원리다. 사랑은 그 모양이 천차만별이고 사람의 숫자만큼 다를 것이다. 사랑의 시작을 알리는 키스는 오감 즉, 보고 듣고 맛보고 향기 촉감 모두를 향기롭게 한다.
우리는 때로 이같은 감각 기관으로 받아들인 정보 이외의 것을 직관적으로 느끼는데, 이를 육감이라고 한다. 키스는 육감으로 사랑을 확인시켜 준다.
키스라는 주제로 만들어진 예술 작품이 적지 않다.
조각에서는 프랑스 출신 로댕의 키스와 로뎅의 조수로 일한 적 있는 루마니아 출신 부랑쿠시의 키스가 다른 아름다움을 풍기고 있다.
그림에서는 클림트의 키스와 이를 모방한 에곤 실레의 추기경과 수녀가 전혀 다른 분위기를 발산하고 있다. 시에서도 한용운의 님의 침묵에 나오는 날카로운 첫 키스의 추억은 운명을 바꿔놓고 루이스 라베의 소네트 18에서 그대의 슬픔을 없애 드리는 행복한 키스가 된다.
-본문 168~169쪽 미술과 시에 어린 키스의 향기 중에서
가을이 오면 나는 영락없는 도둑이 된다. 집 앞에 있는 양천성당 정원과 즐겨 산보를 가고 있는 신트리 공원에는 사시사철 많은 꽃들이 피어 있다. 오가며 관리인의 승낙도 받지 않고 지난 가을에 크고 빨간 나팔꽃 씨와 노란 분꽃 씨를 따다가 금년 봄에 농장에 심었더니 꽃이 만개했다. 나의 사무실 옥상 정원에는 8평 남짓한 텃밭과 시골 농장에는 제법 넓은 정원이 있다.
길가에 조성된 꽃밭이나 공원을 오다가다 예쁜 꽃이 있으면 점 찍어 두었다가 가을에는 어김없이 꽃씨를 채집한다. 물론 봄에는 양재동 꽃시장을 찾아 여러 가지 꽃을 감상하면서 정원에 심을 꽃을 사기도 한다. 희귀한 나무들은 인터넷을 통해 두어 그루씩 원예종묘회사에 주문을 한다.
아침마다 가지각색의 꽃과 인사를 나누고, 철마다 달리 익어가는 열매들을 보는 재미는 무엇과도 비길 데가 없다. 금년에도 복수초로 시작해서 매화와 수선화, 백목련과 개나리, 라일락과 철쭉, 모란과 매발톱, 마가렛과 아이리스, 장미와 낮달맞이꽃, 으아리와 베로니카, 백합과 수국, 칼라와 다알리아, 수련과 나리꽃이 순서대로 차근차근 피었다.
ㅡ중략
마당에
꽃이 많이 피었구나
방에는
책들만 있구나
가을에 와서
꽃씨나 가져가야지
ㅡ피천득 '꽃씨와 도둑' 전문
-본문 189~191쪽 꽃씨 도둑 중에서
나는 머무는 것을 싫어한다.
지금까지 쉼 없이 배웠고 간단없이 쏘다녔다. 대학 졸업 후 회사에서 해외시장조사를 담당하여 오지에도 자주 갔다. 회사가 전두환 정권에 의해 공중분해된 후에는 박사 과정에 들어가 경영학을 전공하고, 대학에 근무하게 되면서도 국내외 여행을 즐겼다.
학부에서 영시와 영수필 공부에 매료되었고, 이후 회사에 근무하다가 대학 강단에 서게 되면서 수필가와 시인으로 등단하였다. 경영학 교수로 정년퇴임을 한 후 바로 중앙대학교 문예창작학과에서 문학박사 과정을 밟으면서 평론가와 소설가로 등단하였다.
내 시를 내가 그리겠다는 욕심으로 틈틈이 그림을 배우다가 아예 홍익대학교 학점은행제 과정을 졸업하여 올해에는 미술학사가 되었다.
제1회 문인화 개인전도 서울 경인미술관에서 열었다. 이러한 배경을 활용하여 쓴 수필을 한 권의 책으로 묶었다.
ㅡ책 머리에 중에서